체험학습 안전사고 부담 큰 교사들

체험학습 갔다 아동학대 고발당해
학부모·교원단체 "체험학습 필요해"
"정부가 활동 제약 요인들 해결해야"

1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초등학교 정문에서 학생들이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는 이달 첫째주로 예정된 현장체험학습을 앞두고 큰 갈등을 겪었다. 법제처 유권해석으로 일반 전세버스를 타는 것이 불법이 되면서다. 교사들은 취소를 주장했지만 교감·교장은 "취소할 경우 전세버스 위약금을 교사들이 1인당 30만~50만원씩 분담해서 내라”고 압박하며 강행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강경하게 반대해 결국 취소됐다. 이 학교 한 교사는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나면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판례가 많아 부담을 느껴왔는데 전세버스까지 불법이 됐으니 체험학습을 무리하게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반면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는 예정대로 체험학습을 가기로 했다. 교사들의 반대에도 교감은 "교육청에서 계도기간을 뒀고, 안전사고 발생 시 관리자도 함께 책임을 지겠다"고 설득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갑자기 취소하면 아이들이 많이 실망하고, 학부모도 반발할 것 같아 가기로 했다"면서도 "혹시 안전사고가 나서 학부모가 '왜 불법 버스를 타고 갔느냐'고 추궁할까봐 너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노란색으로 도색한 어린이통학버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 가을 체험학습을 앞두고 일선 초등학교의 혼란이 극심하다. 지난해 10월 법제처가 '어린이통학버스'(노란버스)로 신고된 차량만 체험학습 이동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학교들이 미리 예약해놓은 일반 전세버스는 '불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차 전체가 노란색이며 어린이용 안전띠와 개방가능한 창문이 설치된 '합법' 노란버스는 전국에 6,955대뿐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 초등학교가 체험학습에 사용한 전세버스(4만9,860대)의 14%에 불과하. 혼란이 가중되자 교육부가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밝혔지만, 불법 버스 이용과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로 많은 교사들이 체험학습 강행에 반대하고 있다.

체험학습이 '교사들의 무덤' 된 이유는

전세버스 불법 문제로 촉발된 논란은 체험학습 존폐로 번지고 있다. 전세버스 논란 이전부터 교사들은 안전사고 책임에 대한 부담이 컸다. 체험학습 도중 사고가 날 경우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판결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초등 교사는 “현장체험에서 한 학생이 친구가 쏜 화살에 맞아 실명한 사건에서 재판부가 교사에게도 책임을 부여해 교육청이 손해배상금을 냈다”며 “전세버스에 대한 정부의 법 해석이 바뀐다해도 교사에게 안전 사고 책임을 묻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체험학습은 아예 폐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거 체험학습 버스에서 용변을 본 초등 6학년생을 부모 요청에 따라 휴게소에 내려줬던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유예(유죄는 인정하나 형의 선고는 유예) 받은 사건도 있었다. 당시 교사는 학부모가 "자녀가 수치심을 많이 느끼니 휴게소에 내려달라"고 요구해 학생을 내려준 뒤 다른 학생들과 떠났다. 이후 여러 차례 학생에게 전화해 부모를 만났는지 확인했지만, 재판부는 1시간 동안 휴게소에서 혼자 부모를 기다리게 한 것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체험학습 업무를 담당한다고 밝힌 한 초등 교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은 교사들에게 무덤"이라며 "체험학습에서 놀이기구를 타다 놀이기구가 멈춰 학생이 다쳤는데, 교사가 같이 탑승하지 않아 교사 책임이 있다는 판결도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교사는 "학생들이 가족과 자주 여행을 다니는 만큼 학교에서 가는 체험학습이 여행 경험의 전부였던 시대는 지났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체험학습은 의무교육과정에도 포함되지 않으니 내년부터는 체험학습이 아예 없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지식만 배우러 가는 곳 아냐"

지난 7월 4일 오전 경기 오산시 경기도 국민안전체험관에서 평택현화초등학교 학생들이 집중호우 등으로 인한 물놀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계곡 고립 탈출 체험을 하고 있다.(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하지만 학교 교육활동의 다양화, 학생들의 조화로운 성장 등을 고려하면 모든 체험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며칠씩 다녀오는 수학여행은 없앨 수도 있겠지만 당일 체험학습이나 진로체험 탐방까지 모두 폐지해서는 안 된다”며 “안전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 활동을 하나둘 제한하다 보면 결국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친구도 사귀고 상황 대처 능력, 문제해결 방법 등을 배우는 곳인데 문제가 생기지 않게 차단하는 것이 교육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복지본부장은 "교실 활동만으로는 다양한 교육을 하기 어렵다"며 "교육 목적을 달성하려면 체험학습, 수학여행 등도 가는 게 맞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안전, 학교만 책임질 일 아냐"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서울시, 경찰 관계자 등이 학교 개학을 맞아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위한 안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체험학습 안전사고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석 교총 교권복지본부장은 "교사 개인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으면 어느 교사가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학교 밖 활동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교사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으므로 체험학습을 제약하는 요소들을 정부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력투입 등 실질적인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이윤경 회장은 "교사가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구조를 바꾸려면 정부가 안전 전문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며 "예컨대 지역에 행사가 있으면 지자체에서 인력을 투입하는 것처럼 어린이 안전 문제도 학교에만 맡길 게 아니라, 지역 주민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나가도 학생 안전 신경쓰느라 교육 활동은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인력 지원을 통해 교사가 현장 교육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